3D

당신의 보통 남자

charmna 2013. 5. 28. 10:52

출처 http://roseofasgard.blog.me


The Avengers' Chris Evans :

Just Your Average Beer-Swilling, Babe-Loving Buddhist


<어벤져스>의 크리스 에반스 : 맥주를 즐기고 아기를 좋아하며 불교를 믿는 당신의 보통 남자

 

버드와이저 라이트 애호가이자 <어벤져스>에 출연한 보스턴 출신 스타인 서른 살의 이 배우는 남자 중의 남자, 남성미의 극치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남성적 페르소나의 이면에는 진지한 불교 수도자, 민망함을 모르는 춤꾼이자 노래꾼, 엄마와 섹스에 대한(그리고 방귀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누는 아들 등,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글 Adam Sachs / 사진 Norman Jean Roy

 


 

“우리 그냥 저 기자 죽여서 묻어버려야 하는 거 아닐까?” 크리스 에반스가 무심하게 깜박거리는 내 디지털 녹음기의 불빛에 대고 방백1)을 한다.

1) 갑자기 웬 방백인가 싶은 분들을 위해 기사의 이해를 돕는 말씀을 먼저 드리자면, 기자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크리스 에반스의 가족들이 작당하여 짧은 연극을 하듯 기자 들으라고 농담을 나누는 상황에서 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크리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소리친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걱정스럽게 아이들을 어르는 듯한 말투가 들려온다. “그런 소리 마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니?”

 

이곳은 에반스의 아파트. 전투 지대Combat Zone라고 불리곤 하는 지역과 차이나타운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건물로, 굉장히 넓지만 과하게 장식되지 않아 보스턴 변두리 준공업 지구에 있을만한 최고층 독신자 원룸의 분위기가 난다. 에반스는 옷을 입은 채로 자다 깬 듯 부스스하고 후줄근한 모습을 하고 있다. 꼿꼿이 몸을 펴 한껏 멋을 낸 영화 속 영웅으로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다. 침을 질질 흘리는 자그마한 아메리칸 불독인 그의 개 이스트East는 텔레비전 앞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고, 그의 냉장고 선반에는 전 세계를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버드와이저 라이트가 캔으로 (일부는 병으로) 차곡차곡 잔뜩 쌓여 있다.

 

조리대에는 근육을 만들 때 먹는 유청단백질 분말도 몇 통 놓여 있는데, 이는 에반스의 룸메이트이자 오랜 친구인 자크 자비스Zach Jarvis의 것이다. 그는 이따금 정식 보수를 받는 조수이자 개인 트레이너로 에반스를 촬영장까지 따라나서기도 한다. 그는 에반스가 작년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에서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애국 청년 역할에 맞게 몸을 키우도록 도와주었던 장본인이다. 벽돌 재질이 그대로 드러난 벽 위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이른 저녁. 하지만 에반스는 자기만의 시간 감각에 의해 활동하는 사람이다. 다음 작품까지의 휴식기 동안 그의 일정은 온전히 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는 낮에는 한참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그보다 더 한참 동안 나이 서른에 어울리는 사교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아니면 이걸 그냥... 없애버려도 되구.” 내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조쉬 펙Josh Peck이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녹음기를 쿡쿡 찌르며 진지한 얼굴로 웅얼웅얼 농담을 건넨다. 그 역시 에반스가 이따금 촬영장 보조로 동반하는 오랜 벗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에반스의 어머니가 녹음기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얘들 말은 듣지 말아요. 제가 이 녀석들 다시는 이런 소리 못 하게 할 테니까!”

 

하지만 아무 말도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은 에반스 가家의 유전자에 없는 형질이다. 에반스의 가족들은 주변에 쉽게 분위기를 전염시키는 사교적인 사람들이다. 아일랜드계 이탈리안이자 자부심이 넘치는 보스턴 토박이로서, 그들은 투철한 결속력과 선천적인 배우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가족 모두가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해요.” 에반스가 말한다. “빌어먹을 폰 트랩von Trapp2) 일가 같죠.” 어머니는 댄서 출신으로 현재 아동극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첫째인 칼리Carly는 가족 인형극 연출 경험이 있고 뉴욕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남동생 스콧Scott은 <원 라이프 투 리드(One Life to Live)>와 <로 앤 오더(Law & Order)> 시리즈의 배역을 따내 지금은 LA에 상주하고 있다. - 에반스도 LA 상주를 시도했었지만 몇 년 전 그만두었다 - 이 같은 내력을 물려받지 않은 것은 어린 여동생 섀나Shanna와 메사추세츠 주 서드버리의 고향집에서 함께 자란 두 명의 “객식구”들 뿐이다. 그들 중 한 명은 방금 언급한 조쉬로, 잔디 깎는 일을 하다 고등학교 졸업반에 들어갔을 때 그의 부모님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부터 에반스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디머리Demery라고 최근까지 에반스의 룸메이트였던 친구이다.
2) Captain von Trapp 폰 트랩 대령.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이 가정교사를 맡게 되는 7남매의 아버지.

 

“집이 무슨 호텔 같았어요.” 에반스가 말한다. “완전 괴짜 가족이었죠. 체포당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에반스 부인에게 전화해. 보석금을 내고 빼 줄 거야.’ 하는 식이었으니까요.”

 

에반스가 자라면서, 가족들은 그 아이들이 모두 탭댄스를 연습할 수 있도록 집 지하실에 특별한 맞춤 바닥을 깔았다. 언제고 바로 파티가 벌어질 듯한 녹음실에는 탁구대와 별도의 출입구도 있었다. 이렇게 에반스 일가는 이웃 아이들이 모두 드나들며 죽치고 싶어 하는 집이자 누구나 입양되고파 하는 가족이 되었다. 오후 내내 그들이 예전의 허물을 폭로하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자니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과 별무늬가 박힌 슈퍼히어로 수트 아래 감춰진 배우의 다정한 본성이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 모양인지, 그들은 지금 인터뷰 기자 살해를 모의하는 중이다. 내가 있는 화장실에서도 전부 들리는 그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훌륭한 연극이라 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필요 이상으로 떠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무리수를 마구 던져대는, 눈에 보일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이 유쾌한 가족과 함께하면 할수록, 그들의 모든 관계에 점점 더 호감이 가고 부러워졌으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예를 들어 보자. 다음은 가족적인 분위기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오늘의 점심 메뉴였던 구운 지티ziti3)를 앞에 두고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이다.

3) 속이 빈 짧은 튜브형 파스타.

 

어머니 : 얘가 어렸을 때, 하루는 저한테 묻더군요. ‘엄마, 방귀가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올까?’ 라구요.

 

크리스 : 저를 아주 버스 밑에 처넣고 보내버리려고 하시네요, 엄마? 눈물나게 감사해요.

 

어머니 : 글쎄다. 지금도 너 강아지가 방귀 끼면 재밌어 하잖니.

 

그리고 나서 아파트로 돌아오자, 에반스 부인은 나에게 다시 아들의 뒷담화를 하려 든다. 물론 아들을 화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악의 없는 수준에서다.

 

어머니 : 너 끌리는 여자가 있으면 항상 나한테 얘기하잖아. 잔뜩 흥분해서 전화도 하고. 그건 얘기해도 괜찮니?

 

크리스 : 그거라면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 : 네가 집에 데려왔던 여자애들 전부 굉장히 다정하고 멋진 애들이었다는 얘기도 괜찮을까? 물론 집에 데려올 정도로 가까웠던 애들 말이야.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 전 일이구나. 안 그러니?

 

크리스 : 엄청 오~래 전이죠.

 

어머니 : 마지막으로 왔던 애가 누구더라? 6년 전이었나?

 

크리스 : 이름은 말씀하시면 안돼요, 엄마!

 

어머니 : 하지만 진짜 괜찮은 애였어. 장외홈런 급이었지.

 

크리스 : 잔뜩 취해서 팸Pam 숙모님 댁에 토했잖아요! 집에 오는 길에도 그랬고 우리 집에 와서도 그랬고.

 

어머니 : 바로 그때 난 걔한테 푹 빠지게 됐단다. 애가 현실감이 있었거든.

 

우리는 모두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는 규칙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강렬한 첫인상의 주인공이 제시카 비엘이었는지는 나도 묻지 않는다. 그녀와 에반스는 수 년 동안 진지하게 교제했던 바 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제시카 비엘이 팸 숙모님 집에서건 차 안에서건 술에 취해 골골거리고 있는 모습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다.

 

불독 이스트가 먹이를 달라는 듯 테이블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온다. “저 개가 얘 평생의 사랑이랍니다.” 에반스 부인이 말한다. “얘가 개한테 하는 걸 보면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부모가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 당장 결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크리스를 돌아본다. “지금 너 하는 걸 봐선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거든.”

 

여기 에반스에 대해 그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몇 가지 또 다른 정보들이 있다. 그는 헬스장에 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 산만해서 저녁 식사 내내 우리에 갇힌 그레이하운드 마냥 다리를 떨며 서 있게 내버려둘 정도였다. 예민한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 공부와 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매주 “일요일 밤 불안 증후군Sunday-night meltdowns” 에 시달렸다. 부모님이 갈라선 후 그는 연기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가족들이 살던 서드버리의 농가를 어머니 명의로 사 드렸다. 덕분에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마침내 그의 어머니와 조쉬가 아파트를 나서고, 에반스와 나는 그의 버드와이저 라이트 비축량을 거덜내며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착수한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 한 며칠 동안은 계속 얘기를 나눈 듯한 기분이다. 사실 기본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금요일 이른 저녁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지금이 토요일 밤이니 일요일 동이 트고 나서야 한숨도 못 잔 상태로 뉴욕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잡아타러 갈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 그의 독신자 아파트가 내뿜는 중력 같은 힘을 떨치고 외출을 하기도 한다. 클럽에서 병으로 주문한 술을 마신 후, 우리를 뒤따르는 보디가드와 한참을 걸어 다시 에반스의 아파트로 돌아온 다음에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진솔하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도 드는 경험이다. 에반스는 유쾌한 대화 상대이다. 이는 그가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솔직한 남자로 곧잘 웃음을 터뜨리며 잠을 잘 필요조차 없어 보일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뒤집어 보면 이따금 스크린이나 텔레비전에서 비춰지곤 하는 남자 중의 남자라는 이미지의 그와 현실 속의 그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멀찍한 곳에서 바라본 영화 배우로서의 크리스 에반스는, 당연한 소리지만 할리우드 식으로 잘 포장된 성공적인 상품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섹스 아카데미(Not Another Teen Movie)>에서 달콤한 일탈에 빠진 멍청할 정도로 눈치 없는 운동부원 제이크를 연기해 메이저 영화에 데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에반스가 가슴에 휘핑크림을 묻히고 엉덩이에 바나나를 달고 나오는 부분이다.) 여성에게 친절한 섹시남의 매력은 - 영화 <내니 다이어리>에서 그는 약칭 ‘하버드 핫티Hottie’ 라 불리는 인물을 연기했다 - 주말에도 케주얼한 옷차림으로 온몸에서 보스턴 출신이라는 오오라를 발산하는 보통 남자의 모습과 상쇄되어 적당한 균형을 이루었다. 만화책 원작 영화가 불러대는 금전적 유혹의 멜로디에 이끌려 <판타스틱 4> 시리즈에 휴먼 토치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깡마른 스티브 로저스로서의 연기와 캡틴 아메리카의 수트를 입은 외모를 통해 가공할 영화적 존재감을 지닌 주인공이자 돈벌이가 되는 주연 배우로서 자신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어벤져스>, 올여름 최고의 거대예산이 투입된 메가와트급 앙상블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그는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헴스워스와 나란히 출연한다.

 

모든 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는 영영 일어나지 못할 뻔 했던 일이기도 하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 역할을 거듭 고사했던 것이다. 본래 아홉 편이었던 출연 계약에 묶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약물 중독에 빠진 변호사 역할을 맡아 영화 <펑처(Puncture)>를 촬영 중이었다. 이런 저예산 영화들에 출연하는 배우라면 대부분 마블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을 맡을 기회를 덥석 붙잡았겠지만, 에반스에게는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향후 십 년 간의 생활이 먼저였다.

 

그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되고 성공까지 했는데 갑자기 모든 게 싫어지면 어쩌지? 다 버리고 숲 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어지면 어쩌냐구?”

 

여기서 “숲 속”이란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조용하게 산다거나 하는 잠깐의 일상적 도피를 빗댄 표현이 아니다. 그가 말한 것은 실제 숲이다. “한동안 크리스마스 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야생 서바이벌에 대한 책이었어요.” 그가 말한다. “그때는 제가 언젠가 숲에서 살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야영도 많이 했고 서바이벌 수업도 들었어요. 열여덟 살에는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 숲속에 들어가 살지 못하면 제 인생은 실패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사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의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그가 보통 망설임의 이유로 꼽는 것은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과 비교적 조용히 살 수 있었던 그때까지의 생활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사 측에서 여섯 편으로 계약을 조정해 주어 역할을 수락한 후 한동안 심리 치료가 필요했었다는 것도 영화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몇 번인가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일을 맡기 전에도 그가 불안증에 시달렸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한 적이 없다.

 

“엄청난 신경과민이예요.” 에반스가 말한다. “무대에 서야 할 때나 언론 앞에 나설 때면 완전 고장이 나버리죠. 제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자리니까요.” 그는 기자 회견장을 꺼리는 배우로 유명하고, 편안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다른 배우들과의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그대로 얼어붙어 침묵을 지키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오디션 때 얼마나 끔찍한지 아세요? 오십 퍼센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방을 나와야 돼요. 원래 피부가 굉장히 창백한데 온통 시뻘개져서 땀만 흘리다 말 그대로 그냥 걸어 나와야 하는 거예요. 어떨 때는 오디션 중간에 그러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면 머릿속에서 혼자 이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죠. ‘크리스, 이러지 마. 크리스, 진정하라구. 그냥 방 안에 앉아서 저 사람이랑 몇 마디 하는 것뿐이잖아. 이게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냐. 그런데도 이깟 일로 이렇게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부끄러운 줄 알아.”

 

어쩌면 이것도 “일요일 밤 불안 증후군”의 일종일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 신경증은 촬영장에까지 그를 따라오지는 않는다. “노이로제는 사전에 미리 다 겪어서 ‘액션’ 이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면 제대로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돼요.”

 

하지만 촬영장에서 공황 상태가 찾아 온 적도 한 번 있었다. 에반스가 <펑처>의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법정 장면을 찍으려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제 머리가 갑자기 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어요. ‘이봐, 우리 가끔 정신 나간 짓 했던 거 알잖아? 지금 당장 그거 또 해보면 어때?’ 하는 식이었다고 할까요.”

 

에반스에게 캡틴 아메리카 역할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던 사람들 중에는 <어벤져스>를 통해 그와 함께 연기하게 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있었다. “줄곧 지켜보고 있었어요.” 다우니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전트가 같아요. 한가할 때는 제 에이전트하고 그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다른 배우들 얘기를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크리스가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가 에반스에게 했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 어린 친구puppy는 곧 거물이 될 것이고, 그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찍게 될 거라고. “우리 일이라는 건 마라톤처럼 길고 긴 장애물 코스와 같아요. 온갖 배역을 모두 이력서에 올려놓는 것은 좋은 일이죠. 배우라는 일이 원래 팀 플레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그 팀이 제가 하고 싶은 작품에서도 저를 지원해 줄 것 아니겠어요? 그때가 되면 제가 영화사에 벌어다 준 빌어먹을 돈도 꽤 많아져 있을 테니까요.”

 

에반스가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우리 시대 영화의 분수령과도 같은 작품에 출연 계약을 할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사실 또한 주효했다. 다우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어벤져스>야말로 슈퍼히어로 오락 영화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아이언 맨 3>는 제외하고 말이죠. 어쨌든 이 작품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를 살려나가려면 상당한 혁신이 필요할 거예요.”

 

캡틴 아메리카는 토니 스타크(아이언 맨)의 부친 하워드 스타크의 측근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사람이다. 이는 에반스와 다우니의 스토리 라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많은 장면들을 함께 찍으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 다우니는 그의 친구가 보이는 신경증상을 “낮은 수준의 레드 카펫 불안 장애” 라고 진단한다.

 

“영화 홍보 과정의 게임쇼 같은 일면을 싫어할 뿐이예요.” 다우니가 말한다. “크리스는 지금 과도기에 있어요. 그런 과도기에는 누구나 중압감을 겪게 마련이죠. 하지만 크리스는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중압감을 세 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예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제가 이 친구를 존경하는 거구요. 제가 꼭 이 친구 편을 들겠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기가 정말 순수한 배우예요. 레드 카펫 공포증도 카모마일 차 한 잔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도구요.”


...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공空이예요.” 크리스 에반스가 말한다. 그리고는 이 정보를 들었으니 내 머릿속이 곧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반박이라도 하려고 들면 맞서 싸워야겠다는 심산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방금 전투 지대Combat Zone라는 곳을 지나며 담배 한 대를 피고 아파트에 돌아온 참이다.

 

“공空이라구요!” 그가 목소리를 높이고 탁자를 내리치며 다시 말한다. 그리고는 숨소리가 날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느릿하게 되풀이한다. “공空이예요, 공空.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게 다 그래요. 우리 삶도, 동물들도, 식물들도, 사람들도 모두 공空인 거죠. 굉장하지 않아요?!” 그가 또 다시 탁자를 때린다. “맥주 더 드실래요? 버드와이저 라이트밖에 없지만 그 정도 일탈은 괜찮잖아요. 여긴 보스턴이니까요. 자, 생각을 정리하고 계세요. 저는 오줌 좀 누고 올게요...”

 

이쯤 해서 내 생각을 밝히자면 이렇다. 자기 개를 끌어안고 나에게 공空이 어떠니, 유한한 삶이 어떠니, 그에 대한 정신 나간 가십들을 믿고 있는 보스턴 소녀들이 곤혹스럽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이 남자는 내가 만나게 될 거라 기대했던 남자가 아니다. 사실 나는 그가 얼간이meatball 같은 사람일거라 생각했었다. 에반스가 “여동생 섀나가 데이트하는 녀석들이 좀 얼간이들이예요.” 라며 그 단어를 쓰기 전까지는 솔직히 누군가를 얼간이라고 불러 본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인터뷰를 할 때는 괜히 복잡한 얘기 꺼낼 거 없이 대충 맥주 좋아하는 보스턴 출신 훈남으로 보이는 게 낫겠다 싶어요. 온갖 얼간이들이 저한테 와서 ‘그러니까 이봐, 불교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하는 식의 질문을 퍼붓게 되는 건 싫거든요.”

 

에반스는 열일곱 살 때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영적인 탐색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같은 탐구와 고행의 길이 자기 삶의 진정한 목표를 정의한다고 말한다. “저는 연기 일을 사랑해요. 그게 저만의 놀이터고, 연기를 함으로써 삶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되죠. 하지만 이승에서의 제 행복과 제가 바라는 평화가 연기에 좌우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제 평생의 목표는 자아의식의 분리예요. 동양 철학에 대해 좀 아시나요?”

 

나는 버드 라이트 몇 모금을 홀짝이며 소심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설명해 준다. “동양철학에 자아의식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스스로를 의식하는 자신의 일부를 말해요. 관찰자이면서 사람들이 자기 몸을 조종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상이죠. 그 의식을 자기 자신과 분리하는 것이 바로 고행의 핵심이구요. 사고방식을 바꾸는 수행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해요. 서양 철학에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관점이죠. 서양 철학은 ‘가서 붙잡고, 획득하고, 이겨서 따내고, 흡수하라’ 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스칼렛 요한슨의 말에 따르면 에반스의 진가 중 하나는 일이 끝난 다음 대화를 끌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저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들은 일 하나가 끝나면 다들 ‘아, 드디어 끝났네. 충분히 달렸어. 이제 날 좀 내버려둬.’ 하는 식이거든요. 하지만 크리스는 다음 일 때문에 지쳐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색이 전혀 없어요.” 두 사람은 십대 시절 <퍼펙트 스코어>의 촬영을 통해 처음 만나 지금까지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 <어벤져스>는 그들이 세 번째로 함께 작업한 영화이다. “딱 봐도 남성적인 체격이죠. 훈남 중의 훈남이랄까요. 영웅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익숙하기도 하구요.” 요한슨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기도 해요. 절친한 여자 친구들도 있는데 정말 뭐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크리스한테는 숨겨진 춤꾼에 노래꾼, 재즈팬 기질도 있어요. 꼭 패트리지 패밀리Partridge family4)에서 자란 남자 같다니까요. <아가씨와 건달들>을 <캡틴 아메리카 2>를 찍는 것만큼이나 행복해하면서 할 친구예요.”
4) 패트리지 패밀리, Partridge family, 70년대 미국 시트콤으로 홀어머니가 음악에 푹 빠진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고 합니다.

 

용변을 봐야 하는 이스트를 데리고 에반스와 나는 옥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에반스는 LA에 상주하는 생활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2010년 이 아파트를 샀다. 그는 매번 이곳에 돌아와 자신의 대가족과 가까운 곳에 머무르며 고등학교 이후 줄곧 이어져 온 보스턴에서의 인간관계를 친밀히 다진다. 이것이 할리우드의 자아 파괴적이고 정신 산만한 난장판으로부터 스스로 현실감각을 지켜내기 위한 그의 방어책인 모양이다.

 

“낮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과 밤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에반스가 말한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맥주를 마시고 스포츠에 대한 얘기를 하죠. 정말 유쾌해요. LA 불교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은 엄청나게 지적인데, 그 친구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도 정말 좋아요. 셀틱스Celtics 농구팀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 역시 제 일부니까요. 이상한 이분법인가요? 어떤 사람들하고는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하고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지내는 게 싫지 않아요. 저한테는 그게 잘 맞는 것 같아요.”

 

나는 다우니에게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에반스의 보통남자regular-Joe 페르소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다우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완전 헛소리죠. 선천적으로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굉장한 지성을 지닌 친구예요. 그걸 일부러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스스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심오한 사람이고, 문화적인 소양도 있는 친구죠.”

 

어쩌면 얼간이meatball와 명상meditation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아적 두뇌egoic brain와 보스턴 여자들의 도道에 대해서도 화제를 바꿔 본다. “전 여자들이 젖은 머리에 운동복 바지 차림인 게 좋아요.” 에반스가 보스턴의 여성들을 두둔하며 말한다. “운동화에 포니테일도 좋구요. 저는 별로 가식적이지la-di-da5) 않은 여자들이 좋거든요. LA 여자들은 너무 가식적이예요. 저는 저한테 똥물을 튀기는shit on6) 보스턴 여자들이 마음에 들어요. 아, 말 그대로 이해하지는 마시구요. 조금은 저를 힘들게 하고 마음고생을 시키는 여자들이 좋다는 뜻이예요.”

5) la-di-da. 가식적이라는 말로 옮겼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고상한 척 가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연예인처럼 잔뜩 치장하고 고상한 맵시를 뽐내지만 속은 가벼운 LA 아가씨들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해 주세요.
6) shit on. 야단치다, 비난하다, 땍땍거리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뒤에 Not literally라는 말이 나오기에 여기서는 우습게 직역해 봤습니다. 이 문단의 대체적인 의미는 겉치장은 덜해도 자존심이 강하고 속인 찬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하지만 에반스를 가장 마음고생 시키는 사람은 물론 그 자신이다. “문제는 제가 이 세상을 분석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제 머리가 바로 이 세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태어나요. 그것을 놓아 보낼 수 있는 축복과 함께요.” 그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낮에는 늘 이런 것들을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다 밤이 오면, ‘다 집어 치워. 술이나 마시자.’ 하는 식이 되고 말죠.”

 

그래서 우리도 결국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시기로 한다. 실컷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또 꽤나 늦은 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지만 에반스는 이따금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영원히 배부를 수 있는 알약이 있으면 저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먹을 거예요.”

 

우리는 그의 개와 함께 했던 야영에 대해, 여럿이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만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간다. “제가 숲 속에서 혼자 있는 걸 보신 적이 있다면 저더러 완전 미친놈이라고 하실 걸요. 노래하고 춤추고 온갖 미친 짓을 다 하거든요.”

 

에반스의 지칠 줄 모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열정이 인상적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남자가 뛰어난 사회 지능social intelligence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펑처>의 공동 감독 중 한명인 마크 카슨Mark Kassen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크리스와 괜찮은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면 그 친구가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됩니다. 끝내주게 유쾌한 친구예요. 몇 시간 내내 얼마든지 같이 있을 수 있는 친구죠.”

 

어느새 나는 시계를 쳐다보는 걸 잊고 만다.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는 좀 더 감정적인 영역으로 화제를 옮겨 본다. 그가 나의 아홉 달 된 아들에 대해 묻는다. 내가 아들의 탄생이 얼마나 경이적인 일이었는지를 이야기하자 캡틴 아메리카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인다. “제가 좀 매사에 좀 눈물바람이예요. 감정을 잘 드러내죠. 한번 좋아하면 정말 푹 빠지는데 그런 감정을 굳이 억누르고 싶지 않거든요.”

 

그는 그의 가족이 얼마나 서로를 친밀하게 느끼는지, 서로에게 매사 얼마나 솔직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매사’라 함은 정말 매사라는 뜻이다. “처음 섹스를 했을 때였는데, 집에 달려와서 이러기도 했어요. ‘엄마, 저 방금 섹스했어요! 그런데 클리토리스는 어디있는 거예요?’”

 

잠깐. 어머니가 그걸 대답해 주더냐고 내가 황급히 그에게 묻는다.

 

“아직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가 대답하고는 갑자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짓궂은 장난기와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평온함이 딱 절반씩 뒤섞인 미소다. “잘 몰라요. 그쪽도 영화 몇 편 찍으시면 알 필요가 없을 걸요...”7)
7) Make some movies, you don't have to know... 당연히 농담이지만 유명한 영화 배우가 되면 여자 만날 시간이 없다는 뜻의 농담인지,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이 알아서 잘 해 준다는ㅋㅋㅋ 뜻의 농담인지는 헷갈리네요.

 

 

깁니다... 길어서 오역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도 역시 아마추어 번역이라는 것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그런 의미에서 원문 좌표 나갑니다.

http://www.details.com/celebrities-entertainment/cover-stars/201205/chris-evans-avengers

기자가 문단나누기를 좀 어색하게 한 것 같은데 문단은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원문의 현재 시제를 살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다소 어색하지만 한국말로도 현재시제를 사용했습니다.

 

 

1. 구글 chris evans interview 검색하면 네번째로 뜨는 인터뷰... 이러다 순서대로 다 올리겠네요.

   일전 GQ의 길고 긴 커버스토리에 이어 이번에는 DETAILS의 커버스토리입니다.

   이 글 쓴 기자는 남자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크리스 에반스의 가족관계와 인간관계, 일상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자꾸 웃깁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교도라는데 어딘지 날나리 같고ㅋㅋㅋㅋㅋ

   숲에 혼자 들어가서도 뭔가 수행이나 수도를 하는 게 아니라 미친 놈처럼 춤추고 노래한다니ㅋㅋㅋㅋ

   로다주 말로는 보기와 달리 똑똑한 놈이라는데

   의외로 생각이 많으면서도 대체로는 헐렁해 보이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3. 아무튼 이 남자 알면 알수록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ㅠㅠ

   싯다르타나 다시 읽고 이 세속적인 욕망을 진정시켜야겠어요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