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바람과 나무의 시 라던가,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등등의 그 시절 고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명작 단편 토마의 심장.
작가는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로 이름 높은 하기오 모토 씨다.
표지 그림은 특히 고졸(...) 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실제 원고의 그림은 훨씬 세련된 느낌이다.
저 시대 특유의 조각상 같은 코, 깊고 반짝이지만 약간 평면적인 눈의 묘사, 섬세한 속눈썹, 굽슬굽슬한 것이 마치 디자인 도안처럼 보이는 곱슬머리 금발의 묘사(쥴리앙의 크롸상 머리를 떠올리면 ok), 고전적이지만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효과적인 연출방법, 오히려 지금 만화들보다 훨씬 동세가 잘 느껴지는 인물들의 포즈, 역동적인 연출 등이 이 만화가 가지는 매력일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비단 이 만화 뿐 아니라 이 시절의 만화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저 시절에 묘하게 유행처럼 번졌던 '김나지움' 의 이야기는 낯선 느낌과 낯익은 느낌을 동시에 갖게 한다.
(떠올려보면 한국 만화든 일본 만화든 저 시절 만화의 배경으로 유럽-특히 독일이나 프랑스 를 많이 사용했으며, 독일 배경의 만화는 대다수가 김나지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장되게 화려하고, 신경질적이도록 섬세하며, 찬란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그것이 내가 이 만화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이며,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멈추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토마의 심장 을 처음 보는 사람이 호감을 갖기란 조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체라던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유행한 그림체라던가,
지금 만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익숙하지 못한 연출방법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 그림만큼 저 소재, 저 주제, 저 연출에 어울리는 그림은 없다고 생각하며, 저 대사들도 저 캐릭터들이 아니면 저만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편견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편견이다.
아름다워서 깰 수 없는 그런 편견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은 다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니까.
굳이 이 편견을 버릴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토마의 심장은 아름다운 만화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기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