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문 : http://shougeki.egloos.com/2922962
■ 제목 그대로 결론부터 말해서 - 영화판 토르는 신이 아니라 외계인이죠.
영화 본편을 보면 뻔히 다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개봉 후 다들 관람하고 나서는 제대로 된 인식이 정립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만...
원작 (& 마케팅) 에 의거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인지...
의외로 보고 오시고 나서도 계속 신이라는 선입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더군요.
최근에는 어벤져스 개봉이 임박하면서 다시금
'토르는 신인데 상대가 되냐, 파워 밸런스 어쩔 거냐' 식의 의견들을 굉장히 자주 목도하게 되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좀 찜찜해서 개봉 전에 한 번 짚어 봅니다.
이런 류의 걱정을 하고 계신 분들은 어벤져스에 신 같은 거 없으니까 안심들 하시길.
그는 외계인일 뿐이죠.

"난 마법과 과학이 같다고 보는 데서 왔소"
예고편에서 미리 노출된 이 대사에서부터 이미 그러한 사실이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마법이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과학일 뿐이다." 라는 아서 C 클라크의 인용과

"바이킹 같은 원시 문명이 그들을 본다면 신으로서 숭배했을지 모른다." 라는
캣 데닝스의 보론은 그 확인사살과도 같습니다.
여기에 오래 전 인류가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오딘의 도입부 나레이션까지 고려하면 이야기는 아주 명확해지죠.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우주의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지도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일 뿐이고,
미개했던 인류에 의해 신으로 떠받들어졌을 뿐입니다.

토르의 능력 봉인 / 해제의 과정이 장갑 해제 / 장착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 또한
이러한 사실관계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죠.
결국 토르의 능력이라 함은 장비빨에 불과할 뿐이고,
그 자신에게 무슨 신으로서의 초월적인 능력 같은 건 애초부터 없습니다.
토르 자신은 지구에 처음 내려왔을 때
human form 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자신의 육체가 격하당하기라도 한 양 행동합니다만,
그거야 아스가르드에서는 평상시에도 갑옷 장착 상태로 생활하니 그쪽이 더 익숙한 것일 뿐
실제로는 그냥 지구에 있을 때의 그 모습이 원래부터 본체인 거죠.
결국 본질적으로는 이 녀석, 아이언맨 = 토니 스타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갑옷을 입고 있으면 아이언맨이고, 갑옷이 없으면 토니 스타크인 셈이죠. 신도 뭣도 아닙니다.
즉, 어벤져스의 파워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초석은 맨처음부터 이미 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죠.
어벤져스에 신 같은 건 나오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ㅅ'
이런 건 그냥 극장에서 영화 보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사항들이고,
이번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다 보니까, 극장에서 봤을 땐 한글자막의 수준이 하도 덜떨어지는 바람에
(위에 쓰인 스샷에서도 일부 드러나고 있지요) 놓쳤던 대사도 하나 눈에 띄더군요.

"이건 네가 천둥 번개나 불러내고 있으면 인간들이 신으로 숭배해 주는 지구 여행 같은 게 아냐"
즉, 지구인들에게 숭배(worship)되어졌을 뿐,
자신들로서도 스스로가 신이라는 인식 따윈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 주고 있죠.
■ 본론은 다 나왔으니 말 나온 김에 자막 번역으로 화제를 돌려 보자면...
"네가 천둥 번개 휘두르는 지구가 아냐" 라니, 참...... 핵심은 쏙 빼놓고 있죠.
작품에 대한 이해도, 애정도 보이지 않는 덜떨어진 번역입니다.

이것도 참 재미있는 장면인데 말이죠.
아스가르드에서 '오딘의 아들' 을 '오딘슨' 이라고 하니까 토르가 자기네들 식으로 착각해서
쉴드 요원 '콜슨' 을 '콜의 아들' 이라 부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센스 있는 대사가 아닐까 싶은데, 역시 한글자막에선 깡그리 무시되었죠. =_=

이런 부분도 번역 퀄리티에 아쉬움이 남는 씬입니다.
원래는 '아인슈타인 로젠 브리지'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달시가 그게 뭐냐고 묻자 에릭 박사가 설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인이 "웜홀 말하는 거야" 라고 하자 달시가 "아하" 하고 바로 알아듣는 상황입니다.
즉, '아인슈타인 로젠 브리지' 라는 표현은 몰랐지만 웜홀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정도인 거죠.
하지만 한글자막에선...... 처음부터 웜홀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못 알아들어서 그걸 다시 설명해주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원래 좀 맹해 보이는 데가 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한국판에선 본래보다도 더욱 멍청한 캐릭터로 변질되어 버린 셈이죠.
전문용어가 나왔을 때 관객 평균의 대중성을 위해 쉬운 설명으로 대치한다는 건
극장용 번역 테크닉의 일환으로서 이해해줄 여지가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영화 내용과 캐릭터를 변질시켜가면서까지 멋대로 바꿔선 안될 일입니다.
또한 이 경우는 용어를 아예 빼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웜홀에다가
원문에 없는 블랙홀, 화이트홀까지 끌어들일 거라면 그냥 원문대로 갔어야 하는 게 맞죠.
어차피 모를 사람이라면 웜홀까지 다 모를 테고, 웜홀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 로젠 브리지라는 표현을 몰랐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웜홀을 의미한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이걸 이런 식으로 건드리는 건 정말 아니죠. 수준 떨어집니다.
■ 사실 이번에 재감상을 하면서는 일판을 따로 공수해서 일본어 더빙 트랙을 중심으로 감상했는데,
위와 같은 문제점들은 전혀 없이 제대로 된 내용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쯤이면 이 땅에서도 번역 퀄리티에 대한 걱정 없이 맘 편히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참... 아득하네요.